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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상자-아들의 일기 덧글 0 | 조회 898 | 2014-06-27 19:40:09
관리자  

집수리를 하면서 정리를 하다보니 우리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제 이 많은 날들을 살았나 싶은 감회에 젖어 있다가

아들의 일기 몇 편과 담임선생님이 써놓으신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아이가 쓴 글에 메아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쁘고 흐뭇할 수가...

그냥 도장만 달랑 찍혀 있었다면 다시 읽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서툰 글이지만 때묻지 않은 일기와

메아리가 되어 준 선생님의 그 정성에 감사드리고 싶다.

 

참새 한 마리 1989 8. 29 화요일(3학년)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비가 오고 있었다. 아! 그런데 참새 한 마리가 비를 피하려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약국 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난 참 참새가 불쌍했다. 비를 맞다가 약국까지 들어갔으니......

그 근처에 처마라도 있었으면 참새가 숨이라도 돌렸을 텐데.....

하지만 여기는 상점과 아파트뿐이어서 참새가 쉴 만한 처마 밑은

없었다. 난 참새에 대해서 안타까운 날이라고 생각했다.

 

오줌 싼 일 1990 3. 22 목요일

나는 미리미리 오줌을 누지 않는다. 꼭 급해졌을 때 눈다.

그런데 오늘 피아노 집 문이 열려 있지 않아서 참다가

참다가 그만 오줌을 쌌다. 나는 피아노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피아노 선생님이 오셔서, 나는

"선생님, 창피하지만요, 저 오줌을 쌌어요."

하고 말하니 선생님께서 아저씨 팬티를 주시고 또 선생님 바지를

주셨다. 나는 화장실에서 입었는데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입고 나서 피아노를 쳤다. 나는 재수 없는 날이라 생각했다.

 

병아리 1990 4. 11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병아리 집에 가 보았더니 병아리가 없었다.

나는 금방 알아챘다. 병아리가 죽었다는 것을....

나는 울고 싶었지만 엄마와 울지 않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울지 않았다. 나는 이 병아리를 판 아줌마가 미웠다. 병아리도

잘 자라는 것으로 팔아야지.....

그렇지만 아빠가 아파트 앞에 묻어주어서 다행이다.

병아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피아노를 가지 않아서 혼남 1990 7, 5 목요일

나는 오늘 깊이 반성했다. 그 이유는 나의 오늘 할 일인 피아노를

가지 않고 또 연락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험을 봤다고, 허락도 안받고 그냥 놀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나는 그런 것도 뿌리치지 못했을까? 정말이지 내가

바보스러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싶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들어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에는

대답을 했다. 엄마는 나를 꿇어 앉혀 놓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놀으니까 재미있데, 안재미있데?"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그게 바로 너의 단점이야"

나는 이 말을 듣고 나는 나의 단점을 고치고 또 이런 짓을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天高馬肥 1991 10. 30 수요일(5학년)

'천고마비'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하늘이 높거나 낮거나 간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살이 찐다. 나는 비만인 아이를 보며

'저래선 안되겠다'하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먹는다.

지금 이 일기를 쓰면서도 먹고 있다.

그런데 천고마비의 계절까지 되었으니 더 많이 먹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을까지만 많이 먹고 겨울부터는 적게 먹겠다.

이 결심이 잘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꼭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서 비만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대청소 1991 12, 19 목요일

오늘 아이들끼리 협동하여 대청소를 했다.

왁스칠도하고 닦고 기차도 타고 정말 난리법석이었다.

그런데 스타킹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스타킹을 얼굴에다 꼈다. 정말 웃긴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스타킹을 신고 디스코를 출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또 눈썰매는 타 볼(타러 갈)필요가 없었다. 이 교실에서 썰매를 타면

되는 것이다. 기선이는 노래를 불러주고 우리는 기차나 디스코를 하면서

바닥을 문질렀다. 그러자 타일이 반들반들해 졌다.

정말 힘들고 재미있는 대청소였다.

 

선생님의 피드백

재범이의 일기는 아주 솔직하고 꾸미지 않고 써서 최고상을 주고 싶단다.

보통 실력이 아니거든? 또 반성과 결심도 아주 잘하고 좋아서 칭찬을

많이많이 하고 싶단다.

 

낭비 1992 1. 7 화요일

내가 왜 여기다 7일 것을 쓰냐하면은 엄마께서 낭비가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맨 처음에 왜 여기에다 쓰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그러나 텅 빈 공간을 보자 이해가 갔다. 너무 낭비가 된다는 것이다.

나도 요즘엔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휴지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쓰레기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쓰레기를 지구 밖에다

버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도 더럽힐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크면 꼭 연구하여 더럽다는 말이 없어지도록 해 보고 싶다.

(5일과 6일 사이에 빈 공간에 일기를 쓰면서 쓴 글)

 

나의 생일 1992 1. 27 월요일

오늘은 내가 고고지성을 울린지 11년이 지나 12년이 되는 날이다.

나도 이제 12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일인 이 날 우리 집에서

반상회를 하게 되었다.4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시험 볼 때 40분이란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하지만 이 시간은 너무

길었다. 드디어 아줌마들은 철수하시고 나의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케익을 자르고서 엄마 아빠 누나의 선물을 받았다.

엄마 아빠께서는 성바오르 출판사의 책을 주셨다. 전부다 감동적이고

내용이 좋았다. 누나가 준 선물은 '최불암 씨리즈' 였다.

참 기분이 좋았다. 이런 책 선물을 받은 데 감사하여 앞으로도

책을 많이 읽겠다.

 

선생님의 피드백

너의 열 두 번째(열 한 번째) 맞이하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많은 은총과 축복 속에서 자라는 네가, 또 깨끗한 마음으로

착하고 슬기롭게 커 가는 너와, 기쁨과 희망으로 벅차있구나.

 

협동의 필요성 1992 1. 28 화요일

오늘은 학교에 모여 연극연습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 여섯 명밖에

오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의 왔지만 여자들은 전부다 오지 않았다.

다른 반은 전부 다 와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우리가 뭔가 뒤떨어진 것을 느꼈다. 바로 협동심이다.

전부다 똘똘 뭉쳐지면 어느 것도 덤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반도 빨리 뭉쳐서 연극을 잘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더욱 열심히 하여 연극을 잘 살려야겠다.

 

선생님의 피드백

눈으로 볼 수 있는 실력 중에서 네 일기는 눈처럼 희고 티없는

맑음을 표현하기 때문에 높은 실력가라고 본다. 새 일기장은

더 멋질 것이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데 가정, 학교, 사회는 아주 중요한 생활환경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그 안에서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가!

이 가을, 모처럼 발견한 내 보물상자도 나를 기쁘게 했지만,

그 보물들이 더 반짝이도록 수를 놓아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다시 보는 우리 가족의 옛 이야기. 그 당시 아들의 생각 속에

조연으로 등장한 나와 남편 그리고 딸들.

아이가 무조건 좋은 엄마로 그리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내 모습. 딸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얘는 정말 이상해........

'요즘 보기드문 무공해'라는 당시의 별명에 걸맞게 전혀 감추거나

꾸밈이 없는 아들의 일기. 이 가을에 다시 찾은 참 소중한 내 보물이다.

(게재를 허락해준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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