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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나혼자가 아니다" 덧글 0 | 조회 682 | 2013-05-18 00:24:12
휴  

"이 세상은 나혼자가 아니다." 작성일: 2010/05/18 작성자: 김정국

 

어제 조간신문에는 그동안 쉬었던 글쓰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기사가 실렸다

작년가을부터 14건의 절도폭행으로 이미 소년법정에 선 경험이 있는 16세 소녀가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의 판결(?)에 울어버린 것이다.

그 판결처분은 판사의 말을 ‘따라하기’가 전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쭈뼛거리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말하라며,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큰 목소리로 따라하다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때 소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의 어머니도 울었고 재판을 돕는 분들의 눈시울도 빨개졌다.

무거운 보호처분을 예상했던 소녀에게 판사가 내린 처분은 ‘일어나 외치기’뿐이었다.

 

상위권 성적으로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소녀가

작년 초 여러 명의 남학생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신체가 일부 마비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학교에서 겉돌면서 비행청소년과 어울리다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부장판사는 “ 이 아이는 가해자로 여기 왔지만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쉽사리 가해자라 할 수 있겠어요?“

“ 아이에게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눈물범벅이 된 소녀를 법대(法臺)앞으로 불러서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소중할까. 그건 바로 너야.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거야.“

 

이런 기사를 써준 기자가 고마웠다.

늘 부정적인 기사가 판을 치는 신문에서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감동이었을까?

 

몇 년 전 소년원 아이들을 상담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결손가정이었고

어떤 따뜻한 말이나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 중 한 아이가 소년원에서 공부를 해서 수능을 치르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적이 있다.

그 때도 특별히 뭘 해 준 게 아니다.

다만 마음을 알아주고 할 수 있다는 격려가 전부였다.

한 번도 받아본 적도, 들어 본적도 없던 말들에

그 아이의 마음이 움직였고 좋은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아직 자리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른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그 길을 알려주거나 이끌어 주는 어른들이 많지 않다.

칭찬할 꺼리 보다는 문제나 잘못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고치라는 지적만 많이 하지 않을까?

가르치고 훈계하고 명령하고 협박하지 아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부모 또한 많지 않다

이 재판에서도 판사가 ‘따라하기’를 요구했지만

자신감, 자존감을 잃은 아이가 자신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그 한마디가 불이 꺼져가고 있었던

소녀의 얼어붙은 가슴에 다시 온기가 살아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그 따뜻함을....

 

소녀의 행위 그 자체만으로 무거운 판결이 내려졌다면

이것은 법조문에 의한 정확한 판결만 존재하지

 인간의 숨결은 찾을 수 없는, 기계적인 해석만 존재하는 재판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삶은 가슴에 재기불능의 낙인이 찍힌 채

절망과 포기의 구덩이에서 몸부림치며 살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여판사의 모성적인 지혜가 어린 소녀의 생명에 사랑의 기운을 선물해 준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 사는 하루는 해와 달의 뜨고 짐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교육도 공교육이라는 해의 교육과 커리큘럼이 없지만 있는 가정에서의 달의 교육이 있다.

이 둘의 적절한 조화가 아이를 지성과 감성을 두루 겸비한 자녀로 자라게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해가 있는 동안의 학교교육이 끝나도 집에 오면

엄마라는 해가 더 쨍쨍하게 비치고 있어서 아이에게 내리쬐는 태양이 두 개가 뜬 꼴이다.

포근히 감싸줄 달빛이 사라진지 오랜듯하다.

 

그래서 부모와 학부모를 구분하는 말이 나왔나보다.

때론 잘못해도 달빛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는 그런 모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있는 것 같다.

판결도 그와 같지 않을까?

정확하고 분명하게 법조문만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맞지만

때론 달처럼 품어주는 모성적 판결도 필요하지 않을까.

만일 이 소녀에게 절도행위를 했으니 당연히 법대로 해야 한다면 아무 할 말이 없다.

그건 머리로는 정확하게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너무 맞는 그 정확한 말 때문에 아이들은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모가 맞는 말 하는 부모이고

너무 정확한 학부모가 또한 아이를 망치고 있다.

 

요즘 귀에 속속 들어오고 마음이 확 열리는 공익광고가 있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이 둘의 차이가 뭘까?

머리로 하는 판결과 가슴으로 하는 판결의 거리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물리적으로 30센티 정도인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걸 안다면

머리보다 가슴에 감동을 주는 교육이 훨씬 사람답게 자라게 한다는 것을 학부모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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